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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익숙해진 신발을 떠나 보낸다는 것 (feat. 미국 뉴멕시코 교환학생 추억팔이)

by 유린하의 인생일지 2026. 6. 3.

 나는 여러 신발을 돌려 신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웩, 더럽지 않으냐고? 아무래도 그런 편이다.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나의 신발은 분명히 더러울 것이다. 그런데 뭘 어쩌겠는가. 오래 신어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는 것이 편안하고, 모든 착장에 신발을 운동화로 통일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나한테는 별 수가 없다.

 

 이번에 아끼던, 아니. 오래 신던 신발을 버리게 되었다. 사유는 물이 새어 나와서. 수조에서 슬며시 물이 흘러나오는 횟집 안에 서있자니 발 뒤꿈치가 축축하더라. 그래서 신발 아래를 보니 밑창이 뜯어 나와 찢겨있었다. 아... 어쩐지 발바닥이 시원하더라 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비가 적당히 오는 어느 날이었다. 물구덩이를 첨벙, 밟은 것도 아닌데. 내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와 양말과 신발이 물과 하나 되어 걸음걸음마다 철퍽거리는 꼴을 보게 있노라니 이제는 정말 보내줄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신던 신발인데. 막상 버려야 한다고 하니 이 신발을 처음 얻은(산 것이 아니다!)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호로록하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2024년 6월, 여름이 막 시작된 2년 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만나러 외가에 내려갔더니 이모가 새것으로 보이는 신발을 갑자기 내밀어 신어 보라고 하셨다. 꼭 내 발에 맞추어 산 것 마냥 신기하게 딱 맞았다. 하얀 르까프 신발이었는데, 당신께서 신으려 산 것이 작았는지 컸는지, 아무튼 사이즈가 맞지 않아 나를 신겨 보셨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너무 잘 맞는다고 하니 흔쾌히 내게 새 신발을 내어 주셨다. 나는 옷과 신발 등을 비롯해 직접 신거나 입어봐야 하는 물건을 사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지라... 갑작스레 생긴 신발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선물 받은 것이라 생각하니 신을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라, 그때부터 참 소중히도 신고 다녔던 것 같다.

미국 뉴멕시코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찍은 노을 사진. 필터 없이 눈으로 봐도 정말 이 색이었다.

 바로 다음 달인 7월, 나는 그 신발을 신고는 미국으로 떠났다. 먼 외국 땅에서 반년을 사는데 그동안 신발을 살 일은 없을 것이므로, 이 운동화 하나와 아주 약간 공식적인 자리를 대비한 단화 하나를 들고 갔다. 이때 나는 신발을 맡길 세탁소도 없고 어떤 환경일지 모르는 그곳에서도 흰 신발을 깨끗하게 유지시키고 싶어서, 다이소에서 사는 싹스틱과 화장 지우는 물티슈를 갖고 나가 매주마다 기숙사에서 신발을 닦고는 했다. 아마 첫 두 달은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만뒀다.

 

 그 어느 순간이 무엇이냐 하면, 생각보다 나는 이 신발을 신고 험한 곳에 갈 일이 많았다. 미국에서 들은 수업 중 단언컨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 1위로, 나는 클라이밍 수업을 들었다. 클라이밍. 그것도 Outdoor Climbing이라는 밖에 나가서 듣는 수업을 들었다.

뉴멕시코대학교 클라이밍 수업. Top Down 방식의 클라이밍을 준비하는 모습.

 무려 교수님이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고 먼 외지로 나가 산을 오르고, 그 산 절벽에 엥커를 깔고 절벽을 타는 수업이다. 절벽은 암벽화를 신고 타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나와 내 신발과 함께하는 여정이기 때문에...  이 하얀 신발을 신고 뉴멕시코의 클라이밍 스폿들을 참 많이도 누볐다. 가장 왼쪽이 나, 빨간 헬멧을 쓴 중간에 있는 사람이 교수님, 오른쪽 친구가 케이븐이다. 차가 없어서 나랑 같이 항상 교수님 차를 타고 다니던 친구였다.

야외 클라이밍 수업, 교수님 차에서 찍은 풍경.

 교수님 차에서 한 컷 찍은 사진. 가는 곳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형이라 신기해서 풍경 사진을 자꾸만 찍었다. 여기는 학교에서 30분?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어서 한 3주 동안은 여기만 다니면서 기초를 배웠었다. 보다시피 한국이랑은 산 식생이 완전 딴판이라 나무 그늘은 없고 짧은 나무랑 풀, 선인장들만 자란다.

야외 클라이밍 수업 중.

 왼쪽 사진은 아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수업에서 찍은 사진. 이제 짬이 좀 찼다고 지면에서 10미터 떨어져서 라펠링하는 중에도 폰을 꺼내드는 나와 친구들... 아찔한 높이에서 다니엘이 찍어준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교수님이 이상한 루트로 로프도 없이 절벽을 샥샥 내려오시길래 감탄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교수님은 정말 대단한 절벽 고인물이신 듯했다.

 

 유타 지역의 아치스 국립공원도 이 신발을 신고 다녀왔다. 낮부터 저녁까지 내내 뜨거운 모래와 돌을 잔뜩 밟는 여정을 이 신발과 함께했다. 암벽등반은 안 했지만 30미터 라펠링 하강을 했으니(Morning Glory Arch rappelling spot, 이곳이다. https://www.moabadventurecenter.com/tours/canyoneering-moab-morning-glory-arch)  내려오다 지릴 뻔한 내가 신발 밑창을 어떻게 굴렸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유타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약 30미터 높이의 Morning Glory Arch에서 라펠링 하다.

 위에 매달려서 살려주시라 하는 사람이 나고, 아래에서 줄을 잡아주시는 분은 내 홈스테이를 해주신 셰이 어머니의 아들분이다. 아들 부부 내외분이 완전 둘 다 굉장한 탐험가셔서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근데 그거랑은 별개로 정말 무서웠다. 클라이밍 수업 때는 그래도 벽이랑 가까이 내려오고 높아봤자 15~20 미터쯤 되는 벽을 탔었어서 음~ 떨어져도 즉사는 아니겠지 전신마비쯤 오겠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다. 근데 이 때는 허공 30미터에서 내려갔어서 와... 떨어지면 즉사겠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경치도 너무 멋있고 특별한 경험이었으나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밑창이 다 까진 이유는, 사실 위의 이유를 재치고서라도 분명 이것 때문이다. 뉴멕시코 대학교가 평지이다 보니 학생들이 보드를 많이 타는데, 생전 보드 한 번 안 타본 나는 궁금한 건 꼭 해보는 성격인지라 기어코 보드를 사서 탔었다.

보드 처음 사고 찍은 사진. 참 예쁜 보드였는데 못 들고와서 아쉽다.

7만 원쯤 하는 걸 아마존에서 샀었는데, 한 4달쯤 타고 비행기에 태워 돌아올 수가 없어서 1년 산다는 언니한테 주고 왔다. 그 언니는 그곳에서 석사도 하고 있고 해서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 텐데 아직도 갖고 있을지 팔았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 독학으로 배우면서 보드 브레이크를 잡으려 하니, 초보라 발을 땅에 질질 끌면서 멈추곤 했다. 당연하게도 밑창이 빠르게 깎여나갔으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신발 하나에 담긴 추억이 참 많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도 많아지고 옛날 얘기를 많이 한다는데, 나는 아직 나이도 먹은 듯 만 듯하게 먹었는데도 벌써 이러니 걱정이다. 안 한 이야기도 물론 많다. 이 신발을 신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도 다녀왔고, 눈물겨운 3학년도 함께 보냈다. 인턴 생활도 이 신발 신고 회사도 다녔다. 어쩌면 까마득한 옛날같이 느껴지는 날들도 고작 2년 전인데, 앞으로의 날들에는 어떤 즐거운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오늘도 눈을 감을 것이다.

이제는 더러워진 신발. 밑창이 다 닳고 벗겨졌다.

 이제는 너무 더러워진 신발이다. 비를 맞아서 더 더러워졌다. 사진에서 굉장한 꼬질꼬질함이 느껴진다.... 너무 험하게 신어서 미안하기도 한데 이제는 정말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다음 신발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산 지는 세 달은 넘었을 텐데 나는 새 신발 신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적당히 신발장에 갇혀 있었던 신발이다. 신던 신발을 버리게 된 건 물론 너무 아쉽다. 그래도 정든 물건을 버리면 또 다른 물건에 정이 들 테니까, 보내줄 때는 쿨하게 보내주는 게 맞겠지. 하얀색 2호기 신발아 기대하렴! 내가 너에게 보여줄 또 다른 세상이 분명 있을 테니까.